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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이 곧 생명 추천하기
작성자원로목회자회 조회수7,290건 추천수0건 작성일자2017-05-08

                                                

                                                   균형이 곧 생명

 

지구에 생명체가 생존하는 것은 지구가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균형이라 함은 고기압과 저기압의 균형이요 물과 공기의 적당한 균형이며 낮과 밤의 균형이다. 우주가 질서를 유지하는 것도 원심력과 구심력이 균형을 잃지 않아 가능하고 지구 주위를 인공위성이 도는 것도 원심력과 구심력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균형은 곧 생명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균형을 잃으면 이미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지구가 균형을 잃으면 곧 지구의 종말을 맞게 되고 우주에 균형이 깨져도 마찬가지다.

높은 곳에서 줄타기 하는 사람이 균형을 잃으면 그것은 곧 죽음으로 연결되고 만다. 균형을 잃은 세월호는 침몰했고 많은 인명피해와 물적 손실을 가져왔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균형이 그렇게 중요하지만 일상에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서 분열 갈등 분쟁의 씨가 되고 있어서 균형의 의미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 균형의 뿌리

 

작금의 세상사를 보면 분명 정상적인 세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어 나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좌우가 격돌하고 갈등하고 세대 간 지역 간 충돌하며 종교 간의 분쟁 국가 간의 충돌을 보면 심히 불안하고 공포감마저 들지만 그래도 현상을 유지해 나가는 데는 좌우가 균형을 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역사의식 섭리의식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역사의식이나 섭리의식의 뿌리는 역사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이요 하나님 주의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가치가 상실된 사회는 금수의 사회요 절망적 현상만이 난무하게 된다.

 

균형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체의 미생물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고자 한다.

미생물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인체 내의 미생물 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인체 세포의 10배에서 100배에 이르는 미생물이 인체 내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생물 수는 어림잡아 100조에서 1000조까지도 헤아릴 수 있다고 하니 엄청난 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수가 아니라 이중에 해로운 것 5%와 이로운 것이 5%이고 90%정도가 중간지점 즉 해롭지도 않고 이롭지도 않은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과로나 과다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의 균형이 깨질 때 중간지역에 있던 미생물들이 서서히 해로운 미생물로 입장이 전환되어 가다가 끝내 회복되지 않고 계속 과로하고 계속 스트레스를 과다하게 받게 되면 급기야 환자로 입장이 바뀌고 만다. 내생활이 균형을 잃을 때 몸 안의 미생물들까지 균형을 깨고 나를 공격하는 입장으로 변한다는 것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가 건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건강이란 생활하는 환경에서 최대한 기능을 발휘 하게끔 유기적으로 구성된 상태를 말한다.

우리 몸의 각 단위는 독립적으로 혹은 때로는 서로 연결되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대로 기능을 못할 때 건강하지 못한 상태 즉 질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이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우리 몸이 갈등과 충돌 없이 적응할 때 확보되는 것이다. 거꾸로 불건강 혹은 질병은 주어진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갈등관계가 형성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조화는 곧 균형이다.

 

건강한 국가는 건강한 여당과 건강한 야당이 있어야 가능 하는 이치와 몸의 건강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로운 것만 있다고 건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이나 북한처럼 일당에 의한 국가운영을 건강한 국가 형태로 보지 않는다.

 

2.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두 마리의 개

 

선입견과 편견에 의해 판단의 균형을 잃었을 때도 정신적으로는 이미 정상의 상태를 벗어난다. 내가 경험 한 것만이 옳고 정의롭고 선하고 진실이며 진리이고 이를 부정하거나 부인 하는 쪽은 불의하고 그릇되고 거짓이며 악이라고 단정하는 사고의 틀에 갇혀 살아온 사람들은 이미 그런 가치관이 고착화되어 막무가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대화자체가 어렵게 되고 살벌한 대립관계를 만들어내기 쉽다. 남의 경험도 존중하고 경청하는 자세여야 하는데 어려운 시절을 거쳐 오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 편견과 선입견이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두꺼워진데다 그것이 고착화되어 거의 병적인 사람들이 많아진 사회는 그만큼 대화와 설득이 어렵게 된다.

 

한국 사회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관심사로 몇 개월 동안 대립 갈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상처가 생기고 치유되어야 할 병적요인들이 사회 구석구석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한 순간에 되어 진 것이 아니라 해방이후 격동기를 거쳐 오면서 균형을 잃은 정보만 접하면서 형성된 가치관이 만들어낸 현상의 결과다. 단순한 이념대결의 장을 넘어 감정대립으로 치달으면서 균형 잡힌 가치관 정립과 대립 갈등의 치유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사회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테러와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도 종교의 편견이나 선입견들에 이념적인 갈등이 끼어들면서 비극은 확대 재생산되어가는 국면을 맞고 있다. 어느 시대나 두 마리의 개(편견과 선입견)에 의한 피해는 있었다. 그 해악이 단절되지 않는 것은 두 마리의 개를 이용하여 이득을 노리는 사람들이 어느 시대나 있었기 때문이다. 선량한 사람들은 언제나 이용당하는 입장이었고 끝내는 그 피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이미 두 마리개의 포로가 되어 생을 마감했고 이런 악순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속되어왔다.

지금의 현실은 소위 유언비어 가짜뉴스가 첨단매체의 발달로 그 파급 효과가 상상을 뛰어넘고 있어 향후 이 분야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고 진솔한 대화와 협력, 소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특히 탄핵사태로 말미암아 형성된 상처와 갈등은 단 순간에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 인정하는 민주적인 절차와 법적인 규범과 화해치유의 포용력에 따라 갈등을 해소해야 할 것 같다. 예컨대 그간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냉정하게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문제가 되어 사법처리 되는 과정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객관적이고 정당성을 인정받는 절차에 따라 판단되어지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도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조건이다.

 

3. 인체의 조직과 기능을 닮은 세상

 

원리강론 (P. 54)에 의하면 인간은 만물을 총합한 실체상이라 했고 소우주라 했다. p. 453에 의하면 피조세계는 완성한 인간 하나의 구조를 본으로 하여 창조되었다고 했으며 이상사회도 완성한 인간 하나의 구조와 기능을 닮게 되어있다고 했다. 삼권분립의 기능과 역할도 두뇌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뇌신경계통과 자율신경계통의 조화가 건강한 인체를 만들고 이러한 기능과 역할을 펼쳐놓은 국가 기관의 조화가 건강한 국가를 유지한다고 했다.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두가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게 되어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은 사회나 국가역시 오래지 않아 사라지는 운명에 처한다. 극단적 사회 대립은 많은 사회적 부담을 갖게 되며 결국 그 구성원들이 부담하게 된다.

인체건강에 있어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역할도 인체의 균형을 잡기위해 필요한 기능이요 조직이다.

교감신경 및 부교감신경은 일반적으로 한 장기에서 서로 반대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교감신경은 심장 박동을 촉진하지만, 부교감신경은 심장박동을 억제한다. 교감신경계통은 기관지의 민무늬근육(내장근육)을 이완시키는 반면, 부교감신경은 이를 수축시킨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기능은 인체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활성화되면 건강을 해치고 끝내는 생을 마감하게도 한다.

 

몸이 균형을 잃으면 그 정도에 따라 치료와 입원 수술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은 시간의 문제다. 균형 회복을 위해 치루는 대가는 본인이 치루지만 입장에 따라 가족이나 사회적 부담으로도 전가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의 흥망성쇠도 권력의 리더십도 따지고 보면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에서도 탕감복귀 원칙이 있다. 탕감복귀도 균형의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 정상화 되려면 한 쪽으로 치우친 것만큼 다른 한 쪽에 대해 이해와 포용 협력 대화 소통 등 다양한 방법이 구사되어야 관계의 정상화도 가능하고 균형을 잡아 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란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신앙도 균형을 유지해야 은혜롭고 서로 존경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4. 균형을 유지하려면

 

인체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면역력이 있어야 한다. 면역력 정도에 따라 균형이 유지된다.

가축을 기르는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백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마구간이 있는 환경에서 자라는 과정에서 면역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살아남으려고 하지 죽으려고 하지 않는다. 해로운 미생물이 많은 환경에서는 그것을 이기기 위해 자연스럽게 자체 면역력을 향상시킨다. 몸 안에 어느 정도 해로운 미생물이 공생하도록 창조된 것은 그래야 면역력이 향상되고 면역력이 있어야 건강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장기 중 맹장이 있다. 맹장의 기능은 이로운 미생물과 해로운 미생물을 적당히 저장하는 곳이다. 소화기관에 미생물의 균형이 깨질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사람은 몸의 균형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균형감각도 중요한 것이다.

마음의 균형을 위해 역사를 배우고 은혜를 갈망하며 일상 경험 속에서도 성찰하고 기도한다. 대의를 위해 명상하고 결단하며 체휼 신앙을 중시한다. 균형에 중요한 포용력은 적응의 의지와 논리가 있어야 생긴다. 포용력이 있어야 면역력이 향상된다.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三足烏)에 대해 포용성 안정 조화 완성의 의미로 천지인의 삼위일체의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삼족오의 핵심도 균형임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눈이 두 개인 것도 균형 있게 보란 뜻이 아니겠는가.

 

불란서 혁명 이후 자유와 평등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실현의 필수요건이었다.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적당한 법을 만들고 제도를 개선하고 많은 정책개발을 하고 예산을 투입한다.

한편으로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화를 꾸준히 이루어 내려고 한다. 함께 어울려도 다름을 들어내기 위해 옷매무세부터 삶의 스타일에 이르기 까지 부단히 차별화를 추구한다. 모든 것이 창조의 본성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개성진리체로서의 인격체를 추구한다. 정상적인 사회는 다름과 틀림을 분명하게 분별하기 위해 식견을 넓히고 안목을 확장하며 다양성의 장점을 부각시켜 나간다. 비정상적인 사회일 수 록 흑백논리에 함몰되어 나와 다른 것은 모두 틀린 것 잘 못된 것 나쁜 것으로 단죄하려 든다. 상대적 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적대적 관계만 남는 결과에 이르게 되고 곧 자신마저 부정당하는 극단적 관계로 전락하여 결국 파국에 이르는 것이 지금까지의 인간세상이었다.

 

5. 균형의 중심은 하나님이요 참부모 사상이다.

 

균형을 잃고 살면 삶이 고단하다. 균형을 잃고도 균형을 잃은 지조차 분 별 못하고 사는 사람이 문제다. 이미 균형 감각이 마비되었거나 상실된 채 살아가면서도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로 오인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는 어느 한 날 조용하게 넘기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 전쟁 테러 등 비극적인 사건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고 있다.

균형의 뿌리가 하나님이요 하나님 주의가 되는 것은 모든 존재의 근원은 한 뿌리인 하나님으로 부터이기에 부모의 심정이면 안 통하는 곳이 없고 공감이 안 되는 것이 없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부모입니다.(천성경p.76. 19)”라고 하셨다. 즉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가는 중심사상은 참부모 사상이다. 두익사상의 뿌리도 참부모 사상으로 부터다. 인류 구세의 사상이 참부모 사상이기에 여기에는 오색인종이 피부색으로 차별되지 않으며 빈부로 남녀로 차별하지도 않으며 좌우익으로 나누어 단죄하지 않는다. 죽이고 살겠다는 것이 참부모 사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진정한 화합과 통일과 행복을 위해서 품고 소통하고 극복해 가는 것이다.

참부모란 균형의 완성이란 뜻도 있다. 균형 잡힌 사람은 모두가 좋아하고 존경한다. 균형을 잃고 편파적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들에 존경받지도 못하며 끝내는 자기 자신도 싫어한다. 물질 중심도 권력 중심도 균형의 중심이 될 수 없음을 그 물질과 권력이 상실되었을 때 어떻게 되었던가를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히 교훈으로 그 뜻을 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참부모 사상이 균형의 중심사상으로 자리 잡는 날이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날이며 우리 모두가 참부모가 되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2017. 4.

원로목회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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