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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교회 추천하기
작성자원로목회자회 조회수798건 추천수2건 작성일자2018-04-26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교회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영과 육으로 창조하셨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타락도 영과 육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무지한 인간이 되었으며 인간의 구원 섭리역시 영육의 양면성의 무지를 극복하는 섭리역사였다. 인류 구원섭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상징적 섭리와 실체 하나님 주권의 나라 실현을 위한 구체적 삶을 표방하면서 영육 구원과 해방을 위한 예배 의식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다.

지금은 천일국 안착시대로서 참어머님께서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교회의 위상을 강조하고 계시기 때문에 신령과 진리를 중심한 예배는 어떠한 예배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이해가 되어야 한다.

 

1. 왜 신령과 진리인가?

 

참어머님께서는 신령과 진리 그리고 청평과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하다. 청평은 신령이고 현장은 진리다. 신한국가정연합의 새 시대를 맞이해 신령과 진리로 하나 되어서 뜻을 이루자 하셨다. (2018. 1.45 목회자특별집회 참어머님의 말씀. 통일세계 천일국 61월호 p.41)

 

천성경 P. 794

영계와 지상세계는 단절된 별개의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의 근본 존재 원리 밑에서 상화 교류하고, 수수하는 상관관계 속에 있습니다. 우리 협회도 본래 신령을 통하여 통일하는 신령협회로 출발했습니다. 신령이 무엇입니까? 일시적 배분적인 영력이나 영적 작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사랑을 중심하고 영계와 인간세계가 조화,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힘입니다. 위하고 투입하는 참사랑의 생활을 통하여 사람이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영적 세계의 협력도 얻는 운동이 통일교회 운동입니다.

 

섭리의 뜻은 신령과 진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2. 신령에 대한 이해

 

신령의 사전적인 의미로 여러 가지 신비현상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초자연적이고 초합리적인 존재를 신령이라 했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성서적 근거는 요한복음 4:23-24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회에서 비롯되었다. 영어성경은 예외 없이 ‘in spirit and truth’로 표현하고 있으며 ()과 진리(眞理)번역된다. 그러나 이 성경 대목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의 잘못된 예배 관을 시정해 주는 말씀으로서,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적이고 형식적이며 물질적인 제사를 부정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한편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사마리아인 등 이방인들의 거짓 신에 대립되는 참 신에 대한 예배를 뜻하는 것이다. 즉 예배할 장소와 예배할 때와 예배할 대상을 바로 알아서 참된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사전연구사가 1998년에 펴낸 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 따르면 신령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한국 민속신앙에서 초자연적인 신이(神異)한 존재로 쓰이는 특이한 용어. 천지신령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고 산신령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가 하면 조상의 신령이라는 말도 쓰이고 있어, 그 사용범주도 한결같지는 않다. 천지신령이나 산신령이라는 용례에서는 자연 그 자체를 신격화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나 이 경우에도 천지 및 신이란 자연에 깃들어 있는 영혼에 대한 믿음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친지신령일 때는 천지의 지배자, 천지의 주인이라는 관념이 이야기될 수 있으나, 산신령일 때는 더러 노인으로 표상되는가 하면 호랑이로 표상되기도 하여 그 함축성이 다양해진다.

 

여러 구체적인 사례들을 종합하게 되면, 신령은 가장 단순하게는 신격화된 영혼, 혹은 신으로 숭상된 영혼이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신령에게는 두 가지가 있어서 하나는 사람의 영, 곧 인령이 신격화된 신령이고, 다른 하나는 신격화된 자연에 내재하는 것으로 믿어진 신령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초자연적이고 초합리적인 존재로서 여러 가지 신비현상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으로 믿고 있다. 또한, 원칙적으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존재이나, 때때로 사람 혹은 그밖의 자연물의 모습을 띠고 나타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형으로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예배에서 신령한 예배를 강조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진리라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천일국 시대의 예배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참부모님이 포함되어있다.

영이신 하나님과 진리 그 자체이신 참부모님을 증거하는 예배일 때 은혜와 감동이 충만해 진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단절의 관계를 회복하고 사람들과의 형제자매 관계도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의 의식이 예배다.

 

 

3. 예배에 대한 이해

 

예배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초월자에게 경배, 고백, 기도, 감사를 통해 초월자를 향한 존경, 숭배와 경의를 표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우리에게 예배란 참부모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들이 하나님과 참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효정의 심정을 담아 경배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통해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며 친교를 통한 형제자매의 인연을 감사하고 천일국 백성임을 확인하고 신종족메시아 사명을 결의하고 결단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천일국은 지상과 천상의 참부모님을 중심한 하나님나라 주권의 실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부모님의 소원을 감당할 수 있는 효정의 빛으로 거듭나는 의식이 천일국 예배인 것이다,

천일국 백성으로서 이것이 참다운 인간의 삶이라고 보여줄 수 있는 삶인가를 성찰하고 그렇게 살 것을 기원하고 다짐하는 자리가 천일국 예배의 자리이기도 하다.

 

예배 참석자는 그 신분이 천일국 백성이다.

천일국 백성으로서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 도리를 다 하겠다는 결의 결단도 예배의 진행에 따라 하나님의 심정체휼과 섭리에 필요한 에너지도 받을 수 있는 열정의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섭리 따로 내 신앙 따로 가 아니다.

아직도 우리의 현실은 악한 세상의 주권이 미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사탄의 궁극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 실현을 부정하고 거부하고 탄압하고 방해하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천일국 예배는 중요한 의식이 된다.

 

단순한 의식만이 예배는 아니다. 불효의 역사를 청산하고 효정의 심정으로 거듭 나는

고백과 다짐의 예배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예배의식 속에서 신명나게 살아가야 할 자신을 새롭게 단장하고 섭리의 결실체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변화와 성숙을 이끌어 내야 한다.

 

비록 신령역사 영적 경험이 있을지라도 나 자신의 성숙이 오지 않을 수 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성품으로 바뀌며, 나와 참부모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삶을 살 때 성숙이 온다. 천일국 예배는 인간의 성숙을 위해 필요한 의식으로 자리 매김 되어야 하며 삶 속에서 참부모님을 모시고 살아갈 때 새로운 가능성도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데 천일국 예배의 뜻이 있다.

 

예배를 알리며 진행하는 사회자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

승리하신 천지인 참모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도 한두 번으로 끝나야 한다.

한 번의 행사와 한 번의 예배에서 감사와 영광의 박수치다 신령한 분위기 깨면 남는 것은 박수 소리만 남으며 은혜와 감동은 그 만큼 반감되고 때로는 반발심도 불러 온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감동을 자제 못하여 나오는 박수도 그 횟수가 많으면 전체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수준이하의 북한 체제에서 자주로 보는 장면을 우리가 그대로 답습한다는 것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씀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육신만 가지고 입술로만 찬송하고 기도하고 귀로만 듣는 예배가 아니라 영육 아울러 공감하고 교감하는 예배가 되도록 참여자 모두가 혼연일체로 마음을 모우고 서로 손을 잡는 정신으로 임하는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4. 예배 시간과 예배에 임하는 자세 관련한 말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를 찾고 인류를 구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안식일을 지켜온 것은 이 날을 거룩히 지킴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이 승화돼 가지고 나 자신을 생각하는, 즉 구원의 목적을 가중시키는데 주력하기 위해서였다.(말씀선집 69-240)

 

예배시간은 제사 드리는 시간이다. 자기 과거를 하나님께 보고하고 속죄해야 한다. 고로 예배 시간은 자유가 없는 시간이다. 예배드리는 그 시간은 원수와 일격 전을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자리다. 하나님을 찾아 나가 모시는 자리에 예복을 안 입고 참석할 수 있는가? 겉모양의 예복이 아니다. 심정의 예복이다.(말씀선집 9-296)

 

이 예배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싸움하는 때다. 단독 결판하는 때인 것이다. 그런데 잠을 자?

그런 자가 있으면 흔들어 깨워라.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하셨듯이, 옆구리에 한방 때려 넣어라. 그것이 사랑인 것이다. (말씀선집 15-121)

 

예배 때의 마음 자세

우리들이 갖고 있는 어떠한 이론이나 저희들이 알고 있는 어떠한 지식 주의 주장 관념이 있다면 아버님, 이 시간 그것을 다 잊어버리고 오직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있는 동심이 되게(4-49)

 

하나에서부터 전체가 아버지의 것으로 인연 맺을 수 있는 시간 되게 (6-199)

 

우리들이 밀려오는 사탄의 어떠한 권한도 막아내고 아버지 안에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하는 시간 되게 (6-263)

 

저의 마음에 다리를 놓으시고 심정과 심정을 연결시켜서 아버지의 사정을 통과시킬 수 있고,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시간 되게, (17-286)

 

이 시간 저의 마음이 아버지를 향하여 무한히 달릴 수 있게, (6-102)

 

 

5. 결론

 

신령은 진리로 검증되고 진리는 신령으로도 설명되어야 한다.

영적 증거가 없는 진리도 공허하고 진리로 설명되지 않는 신령도 공허하기는 매 한가지다. 둘은 따로따로가 아니고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인생사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신령문제가 따르고 진리로 이해되지 않으면 언제나 혹세무민의 유혹이 따른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기하는 것은 예배를 통해 죄의식의 포로, 책임분담의 포로로 부터 해방되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의미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천일국 6년의 섭리적 의미가 우리들의 예배를 통해 체휼되어야 한다. 진리 그 자체이신 참부모님을 모시고 드리는 예배는 환희와 감사 감동의 예배로 승화되어야 한다.

신령과 진리가 분명치 않은 종교는 사회적 부담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종교가 종교 본래 사명을 다하느냐 못하느냐 도 신령과 진리 면에서 명쾌 하느냐 않느냐 에서 결정된다. 때때로 종교가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엔 언제나 신령문제에 대한 오판이거나 진리의 부실한 검증이 가져온 결과였다.

종교 안에서도 끊임없이 개혁의 목소리가 죽지 않고 있음은 아직도 인간 모두를 신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 되게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고 참부모님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신령과 진리의 삶이다. 이를 위해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천일국6년 천력33(418)

원로목회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