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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수 교수의 평화에세이

조수(潮水)가 들어오면 만수(滿水)가 될 때까지 추천하기
작성자황진수 조회수1,779건 추천수4건 작성일자2014-12-13

내 원수 되는 게 몸뚱이입니다. 마음세계에 물어 보세요. 마음은 말이에요, 여기에 5백 명이 있으면 5백 명한테 한 사람 앞에 1억씩 준다면 5백억 다 줄 거예요. 그런데 마음은 `야 야, 5백 명만 주느냐? 4천만이 있는데 4천만에게 다 줘라. ' 그런다구요. 여러분 마음이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그 다음엔 4천만만 줄 게 뭐야? 이북에도 2천만이 있는데. 이북 2천만만 줄 게 뭐야? 아시아에 32억 인류가 있는데 전부 다 1억씩 나누어 줘라 해서 전부 나누어 주더라도 세계가 남아 있으니 또 주라고 한다 이거예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조수가 들어오면 만수가 될 때까지 저 깊은 골짜기가 있으면 그걸 다 메워야 된다 그 말이라구요. 수평선을 만들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그 내용이 어찌되는지 모르지만 수평적 평화세계를 원하는 것입니다.” (214-067, 1991.02.01.)

마음의 세계엔 한계가 없다. 시공을 초월하며, 생각나는 모든 내용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물질적 제약이 없기 때문에 마음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계가 즉시 펼쳐질 수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현실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유토피아와 같은 행복의 세계를 꿈꿔봤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으론 실체적인 기쁨을 느낄 수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마음만으로는 공허한 것이며, 배가 고플 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마음속에 그려도 배고픔이 실체적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마음만으로 다 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창조하실 이유도 없으셨다. 창조 이전 하나님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이상세계의 청사진, 즉 로고스가 생생하게 펼쳐졌다. 고요했던 하나님의 마음이 실체적 사랑의 기쁨을 향한 끝없는 소망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이는 생각실체에 불과했다. 실감나는 기쁨의 자극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속에 품었던 창조이상의 실현을 위해 실체적인 창조를 시작하셨다. 마음속 내용이 그대로 다 실현될 수 있도록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투입을 하셨다. 

 

위 말씀의 서두에 원수 되는 게 몸뚱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는 인류의 타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항상 마음먹은 만큼 몸이 따라줄 수 없는 게 한스럽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여기서 몸뚱이는 인간의 몸만이 아니라 형상적인 물질세계 전반을 가리키고 있다. 부모의 마음은 자녀에게 항상 최고의 것을 주고 싶기에 줄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려운 자식이 있으면 부모는 1억이 아니라 100억도 주고 싶지만, 문제는 현실의 물질적 제약이다. 참부모님에게는 70억 전 인류가 자녀이다. 얼마나 물질이라는 것이 원수처럼 한스러우실까? 

 

물질이 아무리 제한적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 물질의 제한성을 참사랑으로 녹여내 무한한 가치를 품게 해야 한다. 물질의 많고 적음을 초월해서, 비록 콩 한쪽이라도 반으로 나누어 먹을 때 그 반쪽의 콩은 억만금보다도 더 큰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은 성숙해질 수 있다. 왜 가치를 지향하는 마음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몸의 관점을 중심으로 하면 모든 일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이정도 밖에 없는데 어떻게 나눈단 말인가?’ ‘몸이 이렇게 피곤한데 지금 무조건 휴식을 취해줘야 한다.’와 같은 생각이 남을 우선시하는 가치 지향적 마음에 항상 제동을 건다. 물론 마음만으론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기에 몸의 이러한 생각도 존중해줘야 하지만, 그것이 마음의 관점에 앞서 주체가 되면 개체목적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고 만다.  

 

마음은 조수가 들어오면 만수가 될 때까지계속 주라고 한다. 모든 골짜기가 다 메워질 때까지 다 주라고 한다. 그렇게 평평하게 마음의 골, 몸의 골을 메워 사랑으로 하나 되는 세계가 바로 평화의 세계이다. 참어머님께서는 우리에게 흐르는 물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계신다. 그런데 우리는 물질이라는 벽을 만들어 우리를 고여 있는 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물질은 마음의 물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즉 잘 실현될 수 있도록 조절하는 댐의 역할을 해주면 그만이다. 

 

자연은 이미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평화를 실현하여 이 아름다운 지구성을 보존해왔다. 우리 인간이 기적과도 같이 놀라운 수평적 균형을 맞추어 상생하는 자연만물을 주관하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 인간과 인간, 인간과 만물의 골짜기를 사랑으로 메울 수 있는 자주적이고 성숙한 입장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몸뚱이가 원수다라고 하시는 참부모님의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경각심을 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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