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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시의 청취

시련인가!!! 추천하기
작성자김병철 조회수141건 추천수0건 작성일자2017-04-14
지금 우리는 시련을 당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시련을 겪고 있는가?
시련이라면,
이것을 견딜만한가?

견딜만한 시련이라면 참으로 다행이다.
견딜만한 시련이라면 하늘로부터 오는 시련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광야 사십년의 시련을 주셨다.
이스라엘을 낮게(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였다(신명기8:2)
사탄으로 부터 오는 시련이라면 
견딜만한 것이 아니다.
예레미아의 통곡의 노래를 기억해 보시라.

우리가 겪고 있는 이것이 시련이라면,
우리가 쥐뿔도 없으면서 
이스라엘처럼 오만하지 않았나?
축복가정의 도리도 못하면서 축복가정이라고 
2세의 도리도 못하면서 축복가정 2세라고,
목이 뻣뻣하지 않았나?
하나님 하나님 나팔을 불면선 우상의 섬기지 않았나?

견딜만한 시련이 왔을때
머리를 숙이자. 
하늘의 복을 받을려면 반드시 머리를 숙여야 한다.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도처에 늘려 있는 우상을 구별하지 못한다.

하늘은 벌을 하기 위해서 
고통과 시련을 주시지 않는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끝까지 이스라엘처럼 고개가 뻣뻣하면,
받아 감당하기 힘이든 고통이 올거라는 것을 잊지 말자.

예레미아의 고통을 다시 한번 상기 해 보자.
내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으며, 내 간이 이 땅에 쏟아졌으니.....

댓글
김정섭 2017-04-16 IP:211.246.135.63
뭐에 대한 시련인지 진실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만이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용기가 없다면 용서 받을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큰소리로 말할 수 없다면 그 장막을 걷어내지 않고서는 접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하늘로 접근할 수 있는 담이 남아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견딜 수 있는 시련이 아니라 도취가 되어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출산을 위한 고통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더 나쁜 곳으로 나아갈 징조라면 더 늦기 전에 손을 쓰야 합니다. 외부의 적을 대하면서 무조건 스스로에게 죄를 묻고 벌을 청하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자세입니다. 차라리 울분을 쏟아 놓을 공간이 없는 현실이 더 안타까운 것이 아닐까요? 아무도 가슴을 열고 북받치는 심정을 받아주지 못하는 선배가 없는 현실이 더 비참하고 힘든 것입니다. 함께 갈 믿음직한 동료가 곁에 없는 것이 더 외로울 뿐입니다.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동행해 줄 친구가 있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두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련이 아니라 큰 놈을 낳기 위한 산고라 생각하며 용기를 냅시다...